🎞️ 세상이 우리를 겁박해도

2025. 12. 3.

🎞️ 세상이 우리를 겁박해도

✦ 주영화

연아, 여기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뭐부터 들을래? 역시 매를 먼저 맞는 게 낫겠지?

나쁜 얘기는 이래. 너는 아마 불합리한 세상을 바꾸지 못할 거야. 불만을 가진 네가 불평하든 노력하든 상관없이 이 세상은 똑같이 굴러갈 거야. 미안하지만 그게 현실이거든.

좋은 얘기는 이래.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너는 네가 생각하는 옳음을 관철할 수 있어. 그리고 산다는 건 정말로,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밖에는 없어. 사실 그게 전부거든.

⟨굿뉴스⟩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하반기에 가장 화제가 됐던 한국 영화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굿뉴스〉를 고르겠어. 친구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틀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영화가 끝나 있더라고.

속도감 있는 전개와 키치한 연출은 오락적 재미를 더했고 설경구, 류승범, 홍경 같은 배우들의 연기력도 맛깔나서 몰입이 잘 되더라. 영화 내내 벌어지는 촌극에 곁들여진 블랙 유머, 달콤쌉싸름한 여운이 남는 결말까지. 오랜만에 즐기면서 본 한국 영화였어.

서명교 중위가 납치범에게 김포를 평양으로 속이는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굿뉴스〉는 1970년 3월에 발생한 요도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야. 줄거리는 단순해. 일본인들이 탑승한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 평양으로 가려는 공산주의 조직원을 상대로 한국의 서명교 중위(홍경)가 기지를 발휘해 인질을 구출하는 이야기지.

출세가 꿈이었던 서 중위는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영예로운 대통령 훈장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 근데 말이야,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권력가 양반들이 하나같이 자기 잇속만 챙기는 거 아니겠어? 고위 관료들은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승객들의 목숨이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고, 납치범들은 자신들을 평양으로 보내지 않으면 10분에 한 명씩 인질을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애꿎은 서 중위의 마음만 타들어 갔지.

중앙정보부장(류승범)과 기타등등 관료들. (출처-네이버 영화)

작전 성공을 위해 누구보다 고군분투했던 서 중위는 허무한 결말을 맞이해. 일본에서 온 운수정무차관이 승객들을 대신해 자신을 인질로 데려가라며 자원했거든. 납치범과 평양까지 갔다가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온 차관은 국민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 됐어. 중앙정보부장(류승범)에게 이용당한 서 중위는 고작 대통령 시계 하나만 받고 끝났지. 비밀 작전이었던 탓에 자신의 업적마저 함구해야 했어.

허탈해 하는 서 중위에게 작전을 기획한 아무개(설경구)는 이런 위로를 건네. 덕분에 인질들이 살아나지 않았냐고. 꼭 누가 인정해줘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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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이 세계를 지배했던 1970년대를 지나, 자본이 세계를 장악한 2025년에 와서도 우리네 소시민들은 서 중위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 인생 역전의 기회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거대한 시스템 앞에 자신은 장기말에 불과하다는 받아들여야 하지. 누가 알아줘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자기합리화하기에 우리는 더 이상 순진하지 않고 말이야.

인류사에서 개인은 미신, 종교, 이념, 자본 등 사회의 상부구조 아래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부품에 불과했어. 개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건 불가능했지. 물론 위대한 위인들처럼 예외는 있어. 하지만 우리가 세종대왕, 나폴레옹 황제,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는 아니잖아. 오히려 그들이 일으키는 변화에 이리저리 휩쓸리기 바쁘지.

주인이와 태권도장 사범. (출처-네이버 영화)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이 문장은 작품 내적으로 아무개가 언론플레이를 하거나 작품 외적으로 주제의식을 드러낼 때 인용돼. 진실은 따로 있지만 우리는 볼 수 없고, 사람들은 진실을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렇다고 주어진 진실 조각이 완전한 거짓은 아니어서 억울해 할 건덕지조차 없을 때 우리는 '앞면이 거짓은 아니지' 라고 체념하게 돼.

그렇지만 이 문구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런 말도 가능해.

달의 앞면이 거짓일지라도, 달의 뒷면에 진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벽이 높다는 사실이 곧 좌절하라는 의미는 아니야. 세상이 변화되기를 포기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되 그것이 우리 삶의 태도를 오염시키도록 내버려두진 말아야 한다는 뜻이지. 냉소주의에 빠지면 결국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체제의 수호자들과 같아질 뿐이니까.

우리가 마주하는 뉴스가 하나같이 암울해도, 일상적으로 겪는 불합리함이 도저히 나아지지 않아도, 세상은커녕 내가 속한 집단을 바꾸는 일도 쉽지 않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우리 모습이 전부 부정되는 것은 아니야. 세상이 우리더러 순응하라고 강요해도 고분고분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무엇보다 그런 삶의 태도는 결국 가장 중요한 하나를 바꾸거든. 바로 우리 자신 말이야.

환호하는 납치범과 피해자들. (출처-네이버 영화)

평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태도를 바르게 해봐.

삶을 마주하는 태도에 따라서 인생이 바뀌어요.

사람들은 다 재능, 운은 얘기하지만 왜 태도를 얘기 안 하는지 몰라.

압도적으로 영향력이 큰 건 인생에 대한 태도예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일을 대하는 태도.

그거 자체가 사람들의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거야.

인터넷강의로 유명한 정승제 강사의 유명한 어록이야. 툭툭 뱉은 말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 굿 뉴스가 내 삶을 바꾸기만을 기다리거나 배드 뉴스가 내 삶을 망치진 않을까 걱정하는 건 우리 조금만 하자. 세상이 우리를 겁박하더라도 내 삶의 태도까지 인질로 내어주진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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