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러브

어쩌다 보니 최근에 어린이책을 읽을 일이 엄청 많았어. 미취학 아동들이 읽는 그림책부터, 초등학교 고학년이 읽는 동화까지. 그렇게 읽다 보니 문득 어렸을 때 내가 좋아했던 책들이 그리워지더라고. 나는 이사를 자주 다녀서 일기나 책처럼 어렸을 때 내가 자주 만지고 쓰던 것들이 내 곁에 거의 없거든. 특히나 책은, (그 수가 너무도 많기에) 내가 뚜렷하게 제목을 기억하는 것들만 다시 볼 수 있어서 더 애틋하기도 해.

그중 하나가 바로 ⟪강아지똥⟫이야.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고, 여전히 사랑받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지. 어렸을 때 이 책을 안 읽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걸?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읽지 않은 연이들을 위해 간략히 줄거리를 설명할게. 이야기는 어느 하얀 강아지가 골목길 담 밑 구석에 똥을 누면서 시작해. 여기서 태어난 강아지똥의 삶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야. 강아지똥이 태어나자마자 참새가 자기를 콕콕 쪼며 더럽다고 말하곤 날아가 버려. 이때부터 강아지똥의 생애 전반(ㅎㅎ)에 걸친 거대한 물음이 시작되는 거야. '나는 더러운 존재인가? 쓸모없는 존재인가?'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와중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고, 강아지똥 앞에 민들레 싹이 돋아나. 그리고 민들레는 이렇게 말하지.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야. (…)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강아지똥은 기쁜 나머지 민들레를 힘껏 껴안았고, 사흘 동안 비가 내린 뒤 그 둘은 민들레꽃을 피워내지.

이 동화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 처마 밑에 버려진 강아지똥이 비를 맞아 덩어리가 녹아내리면서 땅속으로 스며들고, 그 옆에 민들레꽃이 피어나는 것을 본 권정생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며 며칠 밤을 새워 글을 완성하셨대. ⟪강아지똥⟫은 가장 보잘것없는, 천대받는 것이 자신의 온몸을 녹여 한 생명을 피우는 이야기잖아. 

이전까지 한국 동화는 주로 공주나 왕자가 나오는 환상의 이야기를 다루었대. ⟪강아지똥⟫은 완전히 반대로 간 거지. 이재복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비록 어둡고 추운 곳이지만 그 곳에도 왕자나 공주 못지않게 따뜻한 영혼을 간직한 수많은 존재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준" 거야.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다른 이의 삶을 정말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됐어. 특히 '부자'의 삶, 그러니까 현대판 공주와 왕자들의 삶 말이야. 시그니엘, 트리마제, 원베일리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아파트를 검색하면 끝없이 나오는 룸투어 영상들. 집 구조와 인테리어, 관리비, 세금, 소비, 연예인 누구의 건물 매입 소식까지… 알고 싶지 않아도 꼭 알게 되는 정보들이지. 그 거대한 소식에 압도되어 가끔 내가 티끌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그런데 이상하게, 이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도 우리가 정말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 우리 곁에서 조용히 자신의 전부를 녹여 생명을 피우는 강아지똥 같은 존재들의 삶처럼, 관심을 가지고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 말이야. 화려한 삶은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데,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의 풍경은 흐릿해지고 있어.

그래서일까? ⟪강아지똥⟫이 전하는 메시지는 한참 자란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자라오며 좋아했던 책들은 결국 그 시절의 우리를 만든 문장들이잖아. 누군가는 주인공이 성취하는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배웠고, 누군가는 모험담에서 용기를 배웠고, 또 누군가는 강아지똥처럼 아주 작은 존재의 가치에서 위로를 받았을 거야.

지금 다시 어린이책을 읽는 일은 어쩌면 그때의 나를 다시 불러내어 살피는 일인지도 몰라.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만큼 멀어진 어린 시절의 나에게 "너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야. 네가 있어야만 피는 꽃도 있어." 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일. 2n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내가 한참을 펑펑 운 이유도 그것 때문 아니었을까? ㅎㅎ

어린이책은 짧지만 마음 한가운데를 찌르는 힘이 있어서 더 오래 남는 것 같아. 많이 읽은만큼 소개하고 싶은 그림책이 참 많은데, 오늘은 ⟪강아지똥⟫을 소개해 봤어. 다른 책들도 곧 소개할 수 있기를 ㅎㅎ. 연이들이 기억하는,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그림책은 뭐야? 답장하기를 통해 들려줘. 기다리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