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러브

'다채로운 사이코들을 한 권의 책에 모아야겠어.'

이 책을 편저한 박혜진 평론가는 불시에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해. ⟪퍼니 사이코 픽션⟫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단편소설을 엮은 책이야. 이 안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은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등장인물들이 어딘가 '사이코틱'하다는 거지. 회피, 망상, 불안, 허언… 자극적인 단어들로 등장인물을 쉽게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이 단어들 익숙하지 않아? 20~30년 전 이야기인데도, 어쩐지 지금의 우리들과 똑 닮았잖아! 

이 일곱 편의 소설에는 각각 '변화'를 주제로 한 소제목이 붙어 있어. 잘 안 변하는 사람, 너무 쉽게 변하는 사람, 자기가 변한 걸 모르는 사람…. 그중에서도 나는 '변화를 악용하는 사람'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마지막 단편, 박성원 작가의 ⟨댈러웨이의 창⟩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주인공은 사진을 취미로 하는 남자야. 원래는 2층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작업실을 지하로 옮기고 2층은 세를 주게 되지. 그리고 한 사내가 그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사진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었어. 주인공이 옛날 방식으로 사진 찍기를 고수하는 것과 달리, 사내는 컴퓨터로 사진을 작업하는 사진가였지. 그는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어. "컴퓨터로 작업한다는 게 원본 사진에 없는 사실을 덧붙이는 것이니까요.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만들어내는 게 제 직업이죠."

그 후로 사내는 주인공에게 '댈러웨이'라는 사진가에 대해 들려주기 시작해. 주인공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는데, 살아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사후 그의 사진에 얽힌 비밀을 아마추어 사진가가 밝혀내면서 현대 사진계에서 전설로 추앙받게 된 인물이었지. 그의 존재는 뭇 사진가들로 하여금 좌절감을 심어주기도 했어.

댈러웨이의 사진에 얽힌 비밀은 이러했어. 언뜻 보면 평범한 정물 사진 같은데, 확대경으로 보면 어딘가에 반사된 이미지가 숨어 있는 거야. 가령, 평범한 농가 사진인 줄 알았는데, 스푼에 비친 장면 속에는 농부를 살해하는 군인의 모습이 담겨 있는 식으로. 그렇게 반사된 이미지를 찾아야만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참혹함을 전하려 했던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이후 댈러웨이의 사진을 볼 때는 늘 숨은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는 게 독법이 되었고, 그 촬영법은 댈러웨이 기법이 되었어.

주인공은 댈러웨이 이야기를 듣고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자신이 찍은 사진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새로운 자극을 찾기 위해 댈러웨이 연구를 시작하지. 그런데 연구를 할수록 이상한 점이 생겼어.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댈러웨이에 대해서 똑같은 말을 하는데, 그게 다 2층의 사내가 한 이야기와 같은 거야. 도대체 댈러웨이는 누구일까? 그리고 2층의 사내는 어떤 인물일까?

이 단편은 2000년에 출간된 ⟪나를 훔쳐라⟫에 수록된 작품이야. '새천년'이라는 단어가 생겼던 세기말,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진 촬영을 고수하는 주인공과 컴퓨터 작업으로 이미지를 작업하는 사내는 당시 어떠한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비유일지도 몰라.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속도와 밀도로 디지털, AI가 우리 삶에 침투하는 오늘날, 이 글의 비유와 상징은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밖에 없지.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누구도 댈러웨이를 만나본 적이 없어. 그러나 아무도 그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해. 심지어 사진을 직업으로 삼는 전문가조차도 말야. "그가 누군데? 나는 그를 몰라."라고 솔직히 말하는 것보다, 그의 존재를 원래 알고 있었다고 자신을 속이는 편이 훨씬 쉽고 안전한 길이니까. 그렇게 한 발 빠지기를 기꺼이 선택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댈러웨이는 전설이 되어버려.

2025년, 지금 우리는 수많은 댈러웨이의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몰라. 진짜보다 정교한 가짜가 더 추앙받는 세상.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라는 노랫말이 이토록 실감 나는 시대가 있을까?

주 40시간+a의 근무를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가 매번 진짜와 짜가를 구분하겠다고 나서는 건 너무 벅찬 일이야. 그렇다는 핑계로, 나도 매일 어떤 거짓에 조금쯤 힘을 실어주며 살아가게 됐던 건 아니었을지 생각하게 됐어. 박혜진 평론가가 이 책에서 밝힌 것처럼 "나 역시 모종의 허위에 부역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 거지. 이 글을 읽고 마음속에 진득하게 남은 찝찝함도 그 불안에서 비롯된 걸 거야. 과연 ⟨댈러웨이의 창⟩의 바깥에 서 있는 나는 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오늘 소개한 작품 말고, ⟪퍼니 사이코 픽션⟫에 수록된 여섯 편의 이야기 모두 괴상하고 짜릿하고, 어딘가 씁쓸한 맛이 나는 글이야. ⟨댈러웨이의 창⟩ 결말이 궁금한 연이들, 그리고 이 레터를 읽고 어떤 생각에 빠진 연이들이 있다면 모두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어. 우리 시대의 사이코틱한 면모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우리를 둘러싼 모종의 허위는 무엇이 있을까? 오늘 레터를 읽고 든 생각이 있다면, 답장하기를 통해 남겨줘. 기다리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