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는 약속 없는 주말에 뭐해? 침대 위에서 릴스 3시간 코스? 아니면 영화관에서 2시간 몰입 코스? 저번 주말엔 나도 잠깐 고민하다가 용산 CGV로 향했어.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딥 포커스: What’s Next?⟩에서 어떤 화두가 나올지 궁금했거든.  

펜데믹 동안 극장은 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어. 넷플릭스는 영화표보다 가성비 좋은 대체제였지. 극장을 향하는 발걸음은 자연스레 뜸해졌고 소위 '텐트폴 영화(흥행이 보장된 간판 영화)'에 의존하던 수익 구조는 위기를 맞았어. 지붕이 날아가도 변화의 바람은 멈추지 않는 법. 한국 영화계가 20년간 묵었던 집을 떠나 새 거처를 찾아야 할 시점이 온 거야.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의 위기는 관객인 우리가 알 바는 아니지. 한국 영화 산업이 무너지고 있다니…… 안타깝기는 해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잖아? 무엇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투리 시간은 소중해서, 가치 판단에서 밀린 선택지에 선심 쓸 수는 없으니까. 결국 이런 질문으로 귀결되는 셈이지. "왕복 1시간과 영화표 1만5천원, 과연 그럴 값어치가 있을까?"

질문에 답하기 전에 ⟨딥 포커스⟩에서 나왔던 인상적인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할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극장가는 구정과 신정, 여름휴가와 크리스마스에 맞춰 방문하는 사람들로 붐볐어.

이제는 이런 성수기/비수기 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해.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타겟 층에 적합한 개봉 날짜를 정하는 등 기존과 다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어. 어떤 영화는 봄바람 부는 3월에, 어떤 영화는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장마철에 보기 좋으니까 굳이 성수기를 노려서 개봉할 필요성이 적어진 거야. 

배급뿐만 아니라 제작에 있어서도 수요자를 더 신경쓴다고 해. 톱스타 배우와 천만영화 감독이 보증수표였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타겟 층이 세분화돼서 대중적인 콘텐츠보다 매니악한 콘텐츠가 더 주목받고 있거든.

주변에 이런 사람 많지 않아? ⟨좀비딸⟩ 같은 코미디 영화엔 관심 없어도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은 몇 회차씩 보러 가는 친구, 입소문을 탄 ⟨F1 더 무비⟩를 개봉한 지 세 달 만에 보러 가는 지인처럼 관람 성향과 방식이 다양해지는 추세야.

개봉작끼리 경쟁하는 시기는 끝났어. 이제 극장은 삼성 라이온즈, 티빙의 ⟨환승연애⟩, 인스타그램 릴스와 겨루는 시대야. ⟨파묘⟩ 장재현 감독은 '저와 제 아들은 놀이공원 3회 이용권을 끊으면 청룡열차만 3번 타요'라고 말했어. 놀이공원이 아니라 놀이공원에 있는 청룡열차가 목적이었다는 이 에피소드는 현재의 극장을 대하는 관객의 태도를 묘사한 탁월한 비유였지. 영화만 재밌다면 관객은 언제라도 극장에 놀러 올 준비가 돼있을 테니까.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자. 우리는 왜 한정된 시간과 돈을 쓰면서까지 극장에서 영화를 볼까? 그건 분명 극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청룡열차 급 재미가 있기 때문일 거야. 체인소맨의 액션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4DX관을 방문하고, F1의 현장감을 대형 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로 즐기고 싶은 관객들이 아이맥스관을 찾는 것처럼 말이야. 혹은 나처럼 잔잔하지만 감동이 있는 ⟨미러 넘버 3⟩를 휴대전화의 방해 없이 몰입해서 보고 싶은 이들이 독립예술영화 극장에 갈 수도 있고.  

극장의 경쟁상대는 과연 야구장이나 OTT일까? 난 아니라고 봐. 극장이 맞서야 할 상대는 친근한 척 지근거리에 머물면서 우리 시간을 야금야금 빼앗는 릴스나 틱톡같은 숏폼 콘텐츠라고 생각해. '30분만 누워서 폰 봐야지' 다짐했건만, 릴스 창을 끝없이 밀어내다 보면 어느새 시침이 두 칸을 훌쩍 넘겨버린 황당한 경우를 모두 겪어봤겠지. 그 시간이면 '차라리 영화 한 편을 봤겠다'고 후회하지만, 침대에만 들어가면 매번 같은 실수를 하고 말이야.

우리가 정말 아까워해야 할 것은 돈보단 시간이야.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가 곧 취향과 교양을 증명하니까. 릴스보다 영화관에, 스크롤보다 몰입에 소중한 시간을 써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놓쳐버릴지도 모를 그 시간에 영화를 본다면 관객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극장도, 퇴근 시간을 보람차게 쓰고 싶은 우리들도 만족하지 않을까 싶어. 한국영화산업계가 다채로운 관객 취향에 귀 기울이는 이때, 우리 취향을 맘껏 드러내는 여가 생활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지.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된다면, 일키의 추천작은 어때? 영화가 아니어도 좋아. 일키가 매주 소개하는 책과 전시가 있잖아. 양질의 콘텐츠를 추천하고, 짧지만 여운이 남는 주제를 던져서 연이의 시간을 알차게 채워주는 것이 우리 소망이야. 주식, 부동산, 돈, 결혼 얘기로 점철된 진부한 대화 대신 일키가 한 주의 이야깃거리가 되어줄게. 연이가 일키를 통해 친구들과 교양 넘치는 대화를 나누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