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러브

연아, 안녕. 추석 연휴에 푹 쉬었어? 이른바 '황금' 연휴라고 불리는 기간이었잖아.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갔어? 아니면 집에서 푹 쉬면서 배달을 시켜 먹거나, 로켓배송으로 장을 봐서 맛있는 걸 만들어 먹었어? 정말 잘했어.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에 체력을 비축하는 일은 참 중요하니까.

그런데, 여기서 이런 생각 해 본 적 있어? 내가 순간이동을 해서 본가로 가거나, 음식이 저절로 우리 집에 날아오진 않았을 텐데… 날 본가로 데려다준 버스 기사, 음식을 가져다준 배달 라이더, 그리고 연휴 기간에 내가 주문한 물건을 배송한 택배 기사. 이 사람들에게도 연휴가 황금 같은 시간이었을까?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을 조명하는 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의 두번째 시리즈야. 학교급식노동자, 렌털가전 방문점검원부터 해녀, 양봉가 등 다양한 노동자의 사연과, 난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가족까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지. 글 하나하나마다 길지는 않지만 꼭꼭 눌러쓴 그들의 삶이 담겨있어.

그중에서도 오늘은 재활용선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익명의 노동자가 쓴 글을 소개하고자 해. 편의를 위해 이 글에서는 '아무개 씨'로 지칭할게.

아무개 씨는 2009년 1월부터 재활용선별장에서 일했어. 하루 8시간 주 6일 근무에 급여는 120만 원. 첫 출근 날 점심시간 전에 손을 씻으려 했는데 수도 시설은 없고, 화장실은 재래식 하나. 점심 식사 후에는 쉴 곳이 없어 차에서 보내야 했지. 오후 1시부터는 퇴근시간까지 화장실을 가는 것도 어려웠대.

우리는 내 것도 버리기 싫어서 일회용 장갑을 끼거나 손끝으로 잡고 버리는 일반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에 심지어는 반려동물 사체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가며 하는 작업들. 깨진 유리병과 의료용 주삿바늘에 손은 다치고, 무릎과 어깨는 남아나질 않았지.

벌레가 들끓고 악취가 날로 고약해지던 여름을 지나, 12월. 그간 탈 없이 일했던 아무개 씨는 재계약 불가 통보 문자를 받게 돼. 영문도 모르고 해고된 아무개 씨는 2010년 1월 회사로 달려가 이유를 물었고, 회사는 정당한 계약 해지라고 주장했어. 그 길로 아무개 씨는 노동조합에 가입해 해고된 동료와 복직 투쟁을 했고, 그해 3월 복직 통보를 받았지.

아무개 씨는 지금도 재활용선별장에서 일하고 있어. 약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선별작업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고 해. 환경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몰라. 우리의 손을 떠난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누가 그것을 만지고 처리하고, 새로운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지 알지 못하지. 이들이 일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이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투쟁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해. 그들의 노동 위에서 우리의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야.

노동이 신성하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정말 노동을 신성하게 보고 있는 걸까? 우리가 말하는 노동의 신성함은 진정 노동자의 삶을 향한 존중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면 그저 빛바랜 구호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냉난방도 없는 공장에서, 누군가는 손끝이 닳도록 분류대를 붙잡은 채 하루를 보내고 있어.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노동'이라는 단어가 지닌 진짜 의미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지.

모두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배달, 미화서비스… 이 모든 일들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지 않으면, 그들의 현실은 정책에서도, 언론에서도, 우리의 인식에서도 사라지고 말아.

노동은 특별한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기 위해 매일 반복하는 행위야. 우리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나와 무관한 타인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삶 속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해. 이 사회에 그들이,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함께 증명하는 거지.

혹시 '6411'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한 연이들 있어? '6411'은 우리 사회가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노동자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알린 故 노회찬 의원의 명연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에서 비롯되었어. 오늘은 그 연설의 일부를 인용하며 레터를 마치려고 해.

날이 쌀쌀해지고 은행이 우수수 떨어지는 요즘. 아침에 출근하는 길마다 가지런히 한 쪽으로 정리되어 있는 은행들을 무심히 보고 지나치지 않기를.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 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