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내가 요즘 심란해서 점을 보고 왔는데, 그 점쟁이가...", "사주에서 나 11월부터 풀린대.", "어제 꿈자리가 사나웠는데 해몽 찾아보니까 길몽이더라." 이런 대화해본 적 있어? 내게는 꽤 익숙해. 심란할 때, 중요한 일이나 결과를 앞두고 있을 때, 연애 얘기를 할 때마저도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 쪽으로 흘러가곤 하거든. 미신을 왜 믿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와 가까운 친구들은 대부분 눈을 반짝이며 "그래서 뭐라는데?" 하곤 해.

사주, 신점 같은 게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이라면, 사람들은 왜 그토록 샤머니즘에 열광할까? 나를 빗대어 얘기해보자면 그것들이 단기적인 해답을 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기 때문이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에 간단한 해설지 비슷한 것이라도 받는다면, 어쩌면 틀린 해설일지라도 지금 당장의 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걸 통해서 관점을 달리하고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눠 볼 수 있는 거지. 나는 이것이 맹목적이거나 허무맹랑한 사이비적 믿음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가치라고 생각해.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감각할 수 있어. 이를테면 영혼 같은 것이 그렇겠지.

지금 여기, 영혼을 소환하는 전시가 펼쳐지고 있어. 오늘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을 소개할게.

이번 비엔날레는 하나의 질문,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의 발전에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경험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중략) 총 11개의 소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시장은 영적 만남, 지각적 확장, 꿈같은 교감을 위한 공간이자, 탁월한 예술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발언하고, 소환하며, 변형될 수 있는 ‘공간’으로 제시됩니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영적인 경험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영적인 경험이 뭐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인식하고 그것에 영향받는 경험 말이야. 꿈이 너무 요상해서 해몽을 찾아봤다던지,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전에도 겪어본 적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던지. 이런 일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차원에서 벌어지는 것을 상상하게 해.

《강령: 영혼의 기술》은 이 모든 경험을 통틀어 '영혼'이라는 단어로 범주화했어. 그리고 현대의 미디어 기술들로 과연 이 영혼들을 어떻게 포착하고 가시화할 수 있을지 탐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놨지. 한 데 모인 이 작품들 전체가 영혼을 붙잡는 기술의 전시이자, 각자의 영혼이 무엇이었는지 써 내려가는 '기술'이기도 해. 

흔히 영혼을 생각하면 종교도 함께 생각하게 되지. 우리에게 종교와 예술의 관계는 종속적인 것에 더 가까워. 르네상스 이전의 수많은 종교화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심지어는 아주 먼 옛날의 동굴 벽화도 일종의 주술적 성격이 강했다고 하니 말이야.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야 예술은 비로서 인간의 것이 될 수 있었어. 그런데 이번 비엔날레는 영혼과 주술에 심취하고, 대부분 종교인들에 의해 그려졌거든. 그렇다면 이 작품들과 종교화는 어떻게 다를까?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루돌프 슈타이너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미로같은 구조와 슈타이너의 판화들은 그가 '인지학(Anthroposophy)'의 창시자임을 밝히고, 그 세계 안에서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거라는 걸 예고하듯 펼쳐져 있었어.

인지학이란, 루돌프 슈타이너가 만든 사상 체계야. 그가 살던 20세기 초반은 과학 발전과 산업화가 심화된 나머지 인간의 영혼·정신 같은 개념은 비합리적으로 치부되며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대. 슈타이너는 인간의 영혼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인지학을 만들어냈어. 이는 칸딘스키, 클레 같은 예술가에게도 큰 영향을 줬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림이나 색으로 표현하려는 시도에 딱 맞는 틀을 준 거지. 또한 슈타이너가 강의할 때 판서로 즉석에서 그려낸 그림들 은 액션 페인팅의 원형처럼 평가받기도 해. 판서 치고 꽤 아름답지?

이렇듯, 이 작품들은 종교에 종속된 예술이 아닌, 예술 그 자체로 인간의 영혼을 증명해내려 한 시도에 더 가까워. 저마다 영혼의 순간을 느꼈던 다양한 신비 체험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이지. 그림, 일러스트, 영상매체, 로봇 오브제까지, 형식을 망라한 작품들의 향연이 이어졌어.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을 소개할게.

■ 안리 살라, <생각의 과잉>

예술가 안리 살라는 멕시코의 화가 시케이로스가 생전에 모아두었던 수천 장의 사진 아카이브를 살펴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해. 시케이로스가 수집한 사진들은 '인물, 건축, 고통'과 같이 아주 꼼꼼히 분류되어 있었는데, 건물에서 누군가 떨어져 자살하고 있는 두 장짜리 사진의 카테고리가 '건축'으로 분류되어 있던 거야. 

살라는 시케이로스가 어째서 이 사진을 '건축'으로 분류했는지 궁금했어. 문제는 시케이로스가 이미 30년전 세상을 뜬 망자였다는 거지. 살라는 결국 영매사를 통해 직접 시케이로스에게 묻기로 결심해. 그리고 이 과정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어.

굉장히 섬뜩하면서 흥미로운 기획에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야. 작품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30년 전 죽은 이를 불러내다니! 그 과정도, 대답도 궁금하지 않아? 과연 살라와 시케이로스는 대화를 나누는 데 성공했을까?

방대한 양의 작품을 쭉 보고 있노라면 영혼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돼. 영혼은 죽음과 등을 맞대고, 인간은 죽음을 감각하기에 예술적일 수 있다는 것. 우리 육체는 영원하지 않지만, 정신과 혼은 후세에도 영원히 이어져. 육체의 유한성에 갇힌 우리는 영원을 감각할 줄 모르지만 영원처럼 여겨지는 강렬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그러쥐고 싶어 하지. 그 파편들이 비엔날레에 넓게 펼쳐져 있어. 영혼의 조각들이나 마찬가지야.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을 믿는 연이라면 아주 흥미로운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야. 답장으로 비엔날레가 어땠는지 꼭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