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러브

폭격 소리가 매일같이 들리고, 전쟁으로 사람이 쓰러져 나가는 2025년을 상상해 본 적 있니? 우리에겐 너무 낯설어서 억지로 상상력을 끌어와야만 그려볼 수 있는 일이지만, 지구 어딘가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현실이 되고 있어. 아침에 눈을 뜨면 들려오는 건 새소리가 아니라 공습경보이고, 하루의 계획은 오직 살아남는 것 하나뿐인 삶 말이야.

오늘 소개할 책은 ⟪전쟁일기⟫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본토를 침공한 2022년에 나온 작품이지. 이 책은 전쟁이 시작된 2022년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약 2주 동안 작가가 직접 쓴 그림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어. 

그림책 작가로 촉망받던 올가 그레벤니크. 수만 명의 팔로워와 교류하며 다음 작품을 구상하던 그의 평온한 일상은 새벽을 찢는 폭격음과 함께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어. 연필 하나로 붙잡을 수 있었던 건 무너진 삶의 조각들뿐이었고, 그때부터 그녀의 차기작은 그림책이 아닌 ‘전쟁일기’가 될 수밖에 없었지.

우리집, 우리 마당, 우리 거리는 군대의 사격장이 되어버렸다. 

- 본문 중에서

전쟁은 한 가족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어. 옆집과 거리에서 늘 총성이 들렸고, 그때마다 올가는 가족들과 함께 지하실에 몸을 숨겼지. 전쟁 발발 9일째, 올가는 남편과 어머니를 남겨둔 채 자녀와 반려견을 데리고 국경을 넘기로 결정해. 어머니는 아픈 조부모 곁을 지키고 싶어 했고, 남편은 계엄령 때문에 떠날 수 없었거든*. 그 선택의 순간, 남겨진 사람들과 떠나는 사람들 모두가 서로의 안녕을 기약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서야만 했어.

2022년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나치즘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침공을 감행했어.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명분으로 시작된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지. 러시아는 드론과 미사일을 쏟아부어 우크라이나 도시를 공격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의 정유 시설과 항만을 드론으로 타격하며 맞섰어. 하늘 위를 스치는 기계음은 지금도 사람들이 디디고 있는 땅 위의 삶을 무너뜨리고, 누군가의 집과 마당과 거리를 다시 전쟁터로 만들고 있어.

지구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쟁 소식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린 마을, 오랜 분쟁 속에서 세대를 이어 난민이 된 사람들, 끝나지 않는 폭격에 아이들의 울음이 묻히는 도시들…. 어떤 전쟁은 3년, 어떤 전쟁은 30년 넘게 이어지며 사람들의 삶을 잠식해 왔지. 처음엔 가슴이 아려 뉴스를 붙잡고 들여다보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 앞에서 이내 피로가 밀려와 고개를 돌린 적도 있었어. 화면 속 타인의 불행이 너무 멀게 느껴져서, 차마 다 감당하지 못하고 조용히 눈을 감은 순간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내 하루가 너무 벅차고, 당장 눈앞의 걱정들에 허덕이다 보니 멀리서 울려오는 절규에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지 못하기도 했지.

연아, 너도 문득 그런 생각해본 적 있어? 전쟁은 저 먼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왜 우리가 그 고통을 함께 느껴야 할까. 당장 내가 살아내는 일상조차 무겁고 버거운데, 남의 나라 사람의 슬픔까지 끌어안아야 할 까닭이 과연 있을까.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종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

17세기 영국의 성직자이자 시인인 ‘존 던’이 쓴 기도문의 일부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구절이 탄생한 글로 유명하지. 이 글에서, 그는 ‘종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지’ 묻지 말라고 말해. 모든 사람은 나와 연결되어 있고, 다른 이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과도 같기 때문이야.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감소시켜. ‘나’의 감소. 그렇다면 우리는 전쟁 속에서 벌어지는 타인의 죽음을 그저 먼 나라의 비극으로 치부할 수 없을 거야. 누군가의 집과 삶이 무너질 때, 그 고통은 결국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나누어 짊어져야 할 몫이 되거든. 저 먼 땅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얼굴은 곧 내 옆 사람의 얼굴, 그리고 나의 얼굴이기도 하니까.

⟪전쟁일기⟫에는 사실 숨겨진 이야기가 있어. 바로, 원서가 없단 거야.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이 책을 낸다는 건 몹시도 어려운 일이었기에, 기출간된 원서 없이 한국의 편집자와 우크라이나 작가가 직접 소통하며 이 책을 완성해 냈다고 해. 그렇게 이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전쟁의 기록을 세상에 전할 수 있었어.

그리고 어쩌면 우리도, 이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통해 그 연대에 동참할 수 있을 거야.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여겼던 얼굴들을 곁으로 불러오는 일, 그들의 두려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일, 바로 거기에 우리 몫의 책임이 남아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