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러브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노래 제목은 몰라도 이 가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벌써 삼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시대가 변해도 ‘젓가락질’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정 교육의 지표처럼 자리하고 있어. 어른들이 흔히 하던 “어디 가서 젓가락질 못하면 못 배워먹은 놈인 줄 안다.”는 멘트 기억나니? 마치 어디선가 배워온 듯 비슷한 어투로 우리 귀에 들려왔던 말들! 부모님과 친척이 모두 다른 우리가 같은 기억을 공유한다는 게 참 신기하고 재밌지 않아? ㅎㅎ

⟪젓가락질 너는 자유다⟫는 10년간 푸드 에디터로 활동한 저자 조한별 씨가 쓴 ‘궁극의 젓가락질 안내서’야. 제목만 보면 ‘젓가락질 잘하는 법 A to Z’ 같은 실용서를 떠올리기 쉽겠지만, 이 책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 저자는 독특한 젓가락질을 구사하는 사람들을 ‘젓가락질 소수 민족’이라 명명하고, 그들의 각양각색 젓가락질을 소개해. 나아가 젓가락질 때문에 듣는 핀잔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재치 있게 소개하지.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자신의 젓가락질에 대해 수많은 지적을 들어왔다고 해. 게다가 어린 시절에는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까지 강했을 때라 잔소리가 두 배 이벤트였지. 평생을 밥상 위에서 서러움을 겪고 난 뒤에야 그는 이렇게 생각하게 돼. “아니, 근데 내 젓가락질이 그렇게 잘못된 거야?”

연이들에게 고백하자면 나는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젓가락질을 하지 않아. 보통은 젓가락을 중지와 약지에 각각 걸쳐 지탱하잖아? 그런데 나는 두 젓가락을 모두 중지 위에 올려서 쓰는 습관이 있어. 다만, X자로 꼬아 쥐는 것처럼 눈에 확 띄는 건 아니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잘 안 날 뿐이지.

그래서 릴스나 유튜브에서 간혹 누군가의 젓가락질을 지적하는 댓글을 보면 그게 그렇게 사무치는 거야. 파워 N력을 동원하여, 나중에 중요한 자리에서 “김러브 씨는 이 나이 먹도록 젓가락질 하나 제대로 못 배우고 뭐 했습니까?”라는 말을 듣는 상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어. 아마 젓가락질에 서툰 연이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겠지?

✢ ‘올바른 젓가락질’의 비밀

이 글을 읽는 연이들 중엔 아마 속으로 ‘그래도 젓가락질은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사람도 있을 거야. 다행히 청학동 훈장님 연이들의 마음을 가볍게 할 이야기가 있어. 바로, 올바른 젓가락질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단 거야.

음식인류학자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올바른 젓가락질’이라고 생각하는 건 옛날 무거운 유기 젓가락을 사용하던 시절 만들어진 자세라고 해. 당시엔 젓가락이 지금의 스테인리스 젓가락보다 2~3배는 무겁다 보니, 조금만 엉성하게 잡아도 손이 금세 저렸대. 그래서 안정적인 사용법이 필요했던 거지.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유기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그 자세를 관습처럼 유지하는 거야.

게다가 조선시대 서민들의 밥상 문화를 살펴보면, 애초에 젓가락보다 숟가락이 훨씬 더 중요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18세기 문인 이덕무가 쓴 ⟪사소절⟫에도 식사 예법이 기록돼 있지만, 젓가락질에 대한 언급은 없지. 주 교수는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올바른 젓가락질=바른 식사 예절’이라는 인식이 사실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형성된 것이라고 말해.

✢ 젓가락질=가정 교육?

사실, 젓가락질에 대한 담론이 나올 때마다 내가 가장 거슬렸던 건 ‘가정’ 교육이라는 단어였어.

젓가락은 음식을 집기 위한 도구일 뿐인데,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한 가지만 정해놓고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부모님까지 욕한다고요? 참 이상한 논리라고 생각했어요.

- 본문 중에서

나는 열두 살까지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어.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느라 늘 저녁 늦게 들어오셨거든. 그래서 젓가락질도, 연필 쥐는 법도, 구구단도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께 배웠지.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실은 ‘가정’ 교육이었다고 한다면, 나는 조부모님께 잘못 배운 것일까? 사춘기 때는 내가 특이하게 연필을 쥐고 젓가락을 잡는 것이 어린 시절 조손가정에서 지낸 환경이 만들어낸 결핍인지에 대해 고민한 적도 있었어.

돌이켜보면, 젓가락질을 두고 가정 교육을 운운하는 건 단순한 밥상 예절의 문제가 아니야.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사람을 배제하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습관이기도 하지. 내가 어린 시절 조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것처럼, 세상에는 젓가락질만큼이나 다양한 가족 환경이 있어. 어떤 이는 맞벌이 부모님을 기다리며 혼자 저녁을 먹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가족이 아예 없기도 하지. 세상 모든 사람이 엄마, 아빠, 반려견이 있는 방3화2* 아파트에서 저녁 7시에 모여 밥을 먹는 건 아니잖아.

* 방 3개, 화장실 2개

그런데 만약 그들이 가정 교육에 대한 지적을 듣는다면 어떨까? 과연 그것을 애정 어린 잔소리쯤으로 듣고 넘길 수 있을까?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지만, 이 지점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 이런 형태의 지적이 옳은지에 대해 말이야. 다양한 방식의 젓가락질만큼이나, 다양한 삶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잖아. 

오늘은 DJ DOC의 노래 가사에서 시작해 참 많은 얘기를 나눴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젓가락을 사용하는 우리 모두의 식사시간이 즐거워야 한다는 거야. 상대방의 젓가락을 보기보다 눈을 보고, 특별한 젓가락질을 지적하기보다 그날의 음식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면 더욱 풍성한 식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상대방의 젓가락질을 보는 것이 실례인 세상이 올지도 모르잖아. ㅎㅎ 젓가락질에 관한 연이의 에피소드나 생각이 있다면, 답장하기를 통해 들려줘. 기다리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