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아침 일과는 이래. 8시 10분쯤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 눅눅하고 습한 공기를 마시며 사무실에 도착할 즘이면 어느새 땀이 등을 적신 채지. 컴퓨터를 켜고 사무실 책상용 미니 선풍기를 틀어 바람을 맞으면서 텀블러에 인스턴트커피를 담아와. 조용한 사무실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업무를 하다 보면 할아버지가 계신 남해 시골 풍경이 떠올라. 누군가는 시원한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하는 걸 다행으로 여기라지만, 계절의 정취를 느낄 여유가 없다는 게 슬프기도 해.

여름휴가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올해, (그래서 주영화와 정동진에 다녀왔지만)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 것 같아. 새로운 인풋이나 영감을 넣는 것조차 부담스러웠거든. 그러던 찰나, 평소 정말 좋아하던 작가님의 전시가 새로 열렸다는 걸 알게 됐어. 머리가 꽉 차서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그리고 지쳐서 쉴 곳이 필요한 연이에게 소개할게. 

오늘 소개할 최주석 작가는 내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분이야. 2년 전쯤, 친구를 따라 예술의 전당 근처에 위치한 갤러리에 갔어. 예사롭지 않은 원형의 프레임 안에 돌섬이 그려져 있었어. 하늘 위에 떠있는 듯한 섬은 희뿌연 구름을 몸통 중간중간 두르고 있었지. 산은 어찌나 험준해 보이던지, 신선이 아니고서야 아무나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그 험한 산들 사이로 유유자적 날아가는 새떼들이 보였어. 그림의 이름은 '무릉도'라고 했어.

그림을 오랜 시간 동안 계속해서 바라봤던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야.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거든. 그림을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내가 신선이 된 것처럼 모든 고민을 다 잊어버릴 수 있었어. 본격적으로 전시를 열심히 보러 다니게 된 계기이기도 해. 

갤러리 채율에서 열린 최주석 작가 초대전은 그의 새로운 작업들과 예전 작업들을 한데 모아, 채율의 가구들과 함께 쇼룸 형식으로 전시해두고 있어. 수묵화에 있을 법한 돌산과 바위의 음영, 그리고 독특한 곡률이 인상적이지? 최주석 작가는 회화에 자개를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적이야. 오래된 나전칠기 옷장에 자개가 사용됐던 것처럼, 자개 특유의 반짝임과 독특한 무늬를 이용해 회화에 적용한 거지. 작가님이 자개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빛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질료를 찾는 데서 시작되었대. 모네처럼 빛을 그리는 작가는 많지만, 자신만의 특징, 시그니처가 되는 질료를 찾는 것으로 차별화를 시도한거지. '자개 회화'로 불리는 새로운 회화 양식은 작업이 까다롭고 재료도 비싸다고 해. 작가님 인스타그램에 작업 방식을 상세히 찍어 올려놓기도 했으니, 관심 있는 연이들은 살펴봐도 좋을 것 같아. 가능하다면 작품을 직접 보는 것도 추천할게. 사진으로는 자개 특유의 광택감이 잘 담기지 않아서 작품을 실제로 보는 게 훨씬 좋았거든.

최근에 제작된  또다른 무릉도 연작이야. 바위산 위에 자개 특유의 몽환적인 광택이 반사되는게 비교적 잘 표현된 그림처럼 보여. 물 그림자가 묘사된 그림은 흡사 빛의 화가 모네의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하지. 최근에 제작된 작품들은 그림 위에 레진을 덮어 마치 유리막이 씌워진듯 한 질감이 인상적이야. 레진이 덮인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은 느낌이 색다르더라고. 궁금한 연이는 직접 살펴보길 추천해!

무릉도 연작에는 새가 자주 등장하곤 했는데, 새 이외의 다른 동물들도 점차 등장하기 시작했어. 엄마와 아기 곰 두 마리가 보이는 이 그림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어. 갈 곳 없는 북극곰들이 동굴 바깥의 유토피아, 무릉도를 발견했을 때 느꼈을 기쁨과 환희를 상상하면서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희망의 상징으로 저들을 그렸다고 해.

개인적으로는 무릉도 시리즈에서 가장 사랑하는 요소가 바로 디테일컷에 보이는 새 떼야. 평화롭게 날아드는 새를 보면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도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 되어 버리거든. 나는 이 시리즈가 일종의 현대적 산수화라고 생각해. 쉴 곳이 사라져 버린 현대 사회에서 마음의 풍경, 희망의 풍경을 평화롭게 그려내는 최주석 작가의 작품은 명상의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해. 까다로운 재료인 자개를 가지고 저처럼 아름답고 장대한 풍경을 그려낼 수 있다는 건, 작가님 또한 명상과 같은 자세로 작업에 임하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좋아하는 작가님을 연이들에게 소개하는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하네. 내가 좋아하는 만큼 연이들 또한 좋아해 준다면 진심으로 기쁠 것 같아. 혹시 작품이 좋았던 연이가 있다면 답장하기로 알려주기 바라.

작년 9월, 프리즈 서울과 대한민국 미술 축제에 다녀온 후기를 남긴 지 1년이 지나 또다시 2025 미술 축제 기간이 다가왔어. 올해도 어김 없이 놓치지 않고 즐겨볼 테니 미술축제에서 만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