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국내 여행 좋아해? 나는 매년 계절이 바뀌면 마음이 저절로 향하는 곳이 있어. 바로 사계절과 어울리는 지역 영화제들이야. 봄에는 전주국제영화제, 여름에는 정동진독립영화제, 가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겨울에는 서울독립영화제가 나를 기다리거든. 덕분에 한 계절도 심심하게 흘러가는 법이 없지.

며칠 전 나는 다야와 함께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다녀왔어. 8월 1일 금요일에 퇴근하자마자 서울역으로 향한 나는 지친 몸을 정동진행 기차에 실었지. 바쁜 한 주를 보낸 내가 여행을 즐길 체력이 남아 있을까 걱정했지만, 짭조름한 바다 냄새를 맡고 나니 그런 고민은 하얀 포말처럼 사라지더라. 솨아아- 조용히 우는 파도 소리에 맞춰 내 마음도 들뜨기 시작했어.

한여름에 열리는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더위가 한풀 꺾이는 저녁 8시부터 상영이 시작돼. 낮에는 정동진 곳곳을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해가 질 무렵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대형 스크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저마다 가져온 음식을 꺼내 먹으며 영화를 감상하는 모습은 얼마나 평화로운지 몰라.

다야와 나는 정동초 근처 기찻길에 있는 처갓집 치킨에서 슈프림 양념치킨을 포장해 왔어. 우리는 장편 영화 〈3학년 2학기〉와 〈너와 나의 5분〉을 관람했지. 찹찹한 공기가 맨살에 기분 좋게 감기고, 치킨 양념은 매콤달콤하고, 밤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어. 장면 장면마다 반응이 달라지는 군중 속에서 우리도 같이 깔깔 웃고 환호를 보냈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밤새 나눈 이야기도 즐거웠어. 영화라는 공통점 하나로 2박 3일간 작은 마을이 꾸려진 셈이야. 처음 만났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 아닐 수 있다는 느낌은 낯선 이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연대 의식으로 이어져 있다는 설렘으로 다가왔어. 그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대화하다가 졸린 눈을 비비며 숙소로 돌아갈 때면 정동진의 상징과도 같은 일출이 뜨고 있었지. 밤의 끝이 복숭아색으로 물들고 있더라.

영화제를 즐기러 왔다고 마냥 영화만 보지는 않았어.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라는 축제 슬로건에 맞춰 자연을 만끽했거든. 주택을 개조한 백반집에서 생선구이를 시켜 먹고, 모래사장에 누워 단잠에 빠지고, 수평선 위로 귤색 노을이 내려앉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지. 눈으로만 담기에 아쉬운 풍경은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말이야.

영화제가 아니었다면 내가 정동진에 갔을까? 피곤하다는 이유로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만 봤겠지. 먼 곳까지 수고스럽게 가야 할 의지도 없었을 테고 말이야. 그렇지만 굳이 지역영화제를 가겠다고 기차를 끊고 몸을 실은 덕분에 한여름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 수 있었어. 우리에게는 적극적인 휴식이 필요해. 지역영화제가 그런 휴식의 계기가 된다면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

지역영화제는 1년 내내 진행되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두 눈을 반짝이며 영화를 감상하고 있을 거야. 연이도 올해 지역영화제를 하나 골라서 즐겨보는 건 어떨까? 굳이 떠나는 즐거움을 연이도 꼭 누려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