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열기에 찐만두가 된 것 같아! 세상은 커다란 찜통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쭈글쭈글하고 실하게 익어가는 거지. 차라리 장마나 태풍이 한번 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한 요즘이네.

론 뮤익은 원래 크기의 조각을 만들지 않아.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건 재미없으니까. 원래 크기의 사물은 매일 볼 수 있잖아. 그래서인지, ⟨나뭇가지를 든 여인⟩은 전시실에서 처음 마주하는 작품인 ⟨마스크 II⟩에 비해 훨씬 작고, 신체 일부가 아닌 전신이 모두 나오는 조각이라는 점에서 대조적이야. 나뭇가지들을 한 아름 안고, 불편하지만 나의 몫은 내가 오롯이 책임지겠다는 결연한 표정이 인상적이지. 차마 다 묶이지 못하고 일부 삐져나온 머리카락까지도 어쩐지 신화적인 풍경처럼 보이기도 해.

사람들은 왜 론 뮤익에 열광했을까? 내 생각에는 압도적인 크기와 초현실적인 디테일이 그 어떤 작품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이질감을 주기 때문이야. 섬세하기만 해서도 안되고, 거대하기만 해서도 안되지. ⟨침대에서⟩는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작품이야. 처음 마주하면 '헉'하고 숨을 들이 마실만큼 압도적인 크기에 놀라고, 가까이 다가가 그것이 지닌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보게 돼. 동시에 작품의 주인공이 짓고 있는 오묘한 표정이 살아있음을 느껴. 마치 영화를 보다가 일시정지한 화면 속 인물 같거든. 어디를 쳐다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선이 불안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 마음의 반영인 걸까? 

뮤익은 작품에 대한 모든 설명을 배제하기를 바란다고 해. 그래서 텍스트나 설명 없이 전시를 보게 되어있었지. 작품 밖의 텍스트가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심는 것을 경계했거든.

전시실은 인파로 꽉 차있었어. 작가의 명상적이고 정적인 작업방식과 달리 바글바글하고 때로는 사진 찍는 데 열정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작품을 진지하고 대화하듯 감상할 여유가 없어서 속상했어. 론 뮤익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 그가 공들여 작품을 제작한 시간에 상응하는 진지한 감상을 하고싶었는데 거기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 다른 관객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빨리빨리 움직여야만 했지. 

특히, 뮤익의 대표작인 ⟨어두운 장소⟩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한 사람씩 관람하는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일렬로 줄을 세웠는데, 결과적으로 차례로 사진 찍고 빠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어.

현대미술은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 작가의 의도를 속속들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나'를 투영하며 자유로운 사유가 가능한거지. 하지만 아무리 설명을 배제하고 싶었다 해도, 작품과 개인의 소통이나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면 이런식의 관람은 작가도 좋아할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조금 더 정적인 환경에서 봤더라면, 작품과 나눌 수 있는 대화가 훨씬 많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어. '이럴거면 예약제로 운영하지', '소수정예로만 관람하지' 등등 이기적인 마음도 스멀스멀 피어올랐지. 어쩌면 인증샷과 인스타그램은 현대미술이 기꺼이 끌어 안고 가야할 숙제일지도 몰라. 론 뮤익의 명성을 만들어준 게 사람들이 찍은 사진과 SNS이기도 하니까.

SNS도 좋고 사진도 좋지만, 가끔은 그냥 눈으로 보고 마음속에만 담아가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걸, 론 뮤익 덕분에 다시 생각해봤어. 결국 작품을 보고 남는 건 인증샷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작가와 나눈 대화일지도 몰라. 그게 예술이 우리한테 주는 가장 큰 선물인걸. 7월 13일까지로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전시를 보지 못한 연이는 꼭 관람해보길 추천할게. 전시 관람 문화에 대해 자유로운 의견도 답장하기로 남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