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러브

6월 2일, 그러니까 이 레터를 보내기 이틀 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재하청 노동자가 작업 중 기계에 끼어 숨졌어. 이곳은 2018년에 하청 노동자였던 김용균 씨가 기계에 끼어 24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야. 그 사건을 계기로 위험한 업무를 하청 업체에 맡기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널리 알려졌고,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도 통과됐지. 그런데 겨우 6년 만에, 이 비극적인 참사가 또다시 일어난 거야.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전혜원 기자가 주간지 ⟪시사IN⟫ 소속으로 취재한 사건들 가운데, 우리 시대를 압축해 보여주는 기사 23편을 아홉 개 주제로 엮은 책이야. 2021년에 출간된 이 책이 지적한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어. 2024년 5월에는 쿠팡 심야 로켓배송을 해오던 정슬기 씨가 과로사로 숨졌고, 2025년 5월에는 SPC의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었지. 이렇게 몇 년 사이 사람 이름이 바뀌고, 장소가 바뀌고, 직업이 바뀔 뿐, 구조는 달라지지 않은 채 사고가 반복되고 있어.

김용균법은 원청*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산업재해 예방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그러나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김충현 씨의 원청업체(한전KPS)는 ‘쪼개기 계약’을 통해 하청업체에 안전보건 책임을 떠넘겨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 김충현 씨는 2016년 7월, 한전KPS의 하청업체에 입사한 이후 소속 회사가 무려 8번이나 바뀌었어. 소속 근로자들은 계속 현장에서 일하는데, 원청과 계약을 맺는 하청업체만 계속 바뀌는 식이었지.

* 공사나 제조 등과 같이 큰 규모의 일을 수주하여 하청업체에게 해당 업무를 맡기는 주체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몇 달 뒤에 이 업체가 원청과 계약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용이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청노동자들은 위험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기 어렵다”고 말했어.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원청인 태안화력은 발전소가 폐쇄될 예정이라 필요한 인력이라도 충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며 “원청이 던져준 이윤이 줄어들자,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이 가장 먼저 위협받았고, 위험은 아래로 또 아래로 흘렀다”고 강조했지.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서도 저자는 같은 점을 지적해. 바로 “위험은 아래로 흘러 ‘하청’에 고인다”는 거야. 저자는 화학물질 관리체계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급성중독으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반복되는 현실을 보여주며, 급성 화학물질 중독 대응 체계가 미비한 상황에서 위험이 '아래'로 흐른다고 설명했어.

책에서 언급된 화학물질 중독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영세・파견업체의 20~30대 노동자였어.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화학물질을 취급해야 하니, 결국 그 책임이 영세 사업장으로, 다시 파견 노동자에게로 떠넘겨지게 되었던 거야. 조성식 동아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이런 곳은 노조도 없어서 자신을 보호할 권리를 주장하기가 힘들고, 노동시장에 갓 진입한 이들에게 정보를 충분히 주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한 작업에 투입하다 보니 미숙련된 사람들이 중독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지.

한편, 한전KPS는 사고 보고 문건에 “파급 피해·영향 없음: 발전설비와 관련 없는 공작기계에서 사고 발생”이라고 했어. 사고의 진상은 더 규명되어야 할 문제지만, 애도 한 마디 없이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전기 생산에 피해나 영향이 없다고 건조하게 보고한 점은 씁쓸함을 남기는 게 사실이야.

당장 '산업재해 사망'이라는 키워드만 검색해 봐도 수많은 사고들이 쏟아져 나와.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말이야.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블루칼라 노동자라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타자화해 바라보는 것 같아.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할 뿐, 그 일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불안함은 느끼지 않지. 하지만 저들에게 드리운 노동의 그림자가 정말 우리와 무관한 것일까? 우리는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걸까? 지금 우리가 일하는 방식, 내일 출근해서 마주할 사람들, 우리 부모님의 노동과 친구의 퇴근길. 이 모든 것과 정말 상관없는 일일까?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서는 연예인, 외교관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이 겪은 비극적인 죽음을 다뤄. 얼마 전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씨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는 사실만 봐도, ‘노동환경이 만들어낸 죽음’이 우리와 그렇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노동’을 제삼자적인 것으로 말해왔는지도 몰라. 너무 어렵고, 무겁고, 정치적인 것. 혹은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짠한 무엇’. 그러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참사를 마주하면서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어. 노동은 삶이고, 삶이 사라지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문제는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

이 책은 2021년 11월에 출간되었어. 대통령 선거를 넉 달 앞둔 시점이었지. 그리고 이 글을 연이에게 보내는 2025년 6월 4일 새벽,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이 탄생했어. 나는 새로운 대통령이 노동에 드리워진 이 커다란 그림자를 진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 더는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름 석 자가 사진 속에 멈춰버리는 일이 없도록, 책임을 미루는 구조가 사라지도록.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슬픈 반복을 그냥 스쳐 지나치지 않도록.

2020년 4월, 38명이 숨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를 두고 김훈 소설가는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라는 칼럼을 썼어. 오늘은 이러한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칼럼을 부분 인용하며 레터를 맺으려 해. 무거운 주제였지만 오늘 레터도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 연이에게도 '노동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까? 답장하기를 통해 연이의 생각을 들려줘.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어쩔 거나 어쩔 거나.

언어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온몸의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은 더 크게 울렸다.

그 울음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울음이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의 울음이었다. 그 울음은 어디로 향할는지 방향이 없는 울음이었다. 허공을 향해 우는 울음이었고 절벽에 대고 우는 울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티브이를 보니까 여러 전문가들이 나와서 과거를 분석하고 현실을 진단하고 예방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왜 이런 참사가 거듭되는가, 어떻게 하면 이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 한국 사회는 모르는 것이 없다. (…) 이것은 모두가 말짱 헛것이고 꽝이고 도루묵이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이것은 이미 의미 없는 질문이다.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우리는 왜 빤히 보이는 길을 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도루묵이 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우리는 왜 이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