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러브

아니 에르노는 1940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문학 교수야.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장롱 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한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고, 여러 문학상을 받았지.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수상은 단연 2022년 노벨문학상이야. 스웨덴 한림원은 그녀를 “개인적인 기억의 근원,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냉철한 예리함을 통해 드러낸" 작가라고 평가했어.

에르노의 작품은 대부분 자전적 성격을 띠는 오토픽션(autofiction)이야. 데뷔 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구체적 경험을 소재로 삼았고, 그 과정에서 모든 픽션을 포기했다고 해.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이 혼합된 그녀의 글쓰기는 부모의 신분 상승, 청소년기, 사랑, 결혼, 임신 중절, 어머니의 알츠하이머 투병과 죽음, 그리고 자신의 유방암 투병까지 소재로 하며 자기 자신을 해부해 왔지.

오늘 소개할 책은 ⟪사건⟫이야. 이 책은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레벤느망⟩의 원작이기도 해.

많은 소설들이 임신 중절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 일이 정확하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방식에 대해서까지는 세부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스스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과 이제 더는 임신하지 않은 상태 사이는 생략되었다.
 – 본문 중에서

책은 1999년, 50대 후반의 '아니'가 산부인과에서 에이즈 음성 판정을 받고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돼. 병원을 빠져나오는 길에 그녀는 1963년, 자신이 23세였을 때 예상치 못한 임신 진단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지. 여기서 말하는 ‘사건’은 대학생이었던 아니가 임신 진단을 받고, 불법적으로 임신 중절을 하게 된 과정을 의미해.

1963년 당시 프랑스에서는 임신 중절이 불법이었어. 시술을 받은 여성은 물론, 시술가도 형을 받아야 했지. 당시 수많은 여성이 ‘불법’이라는 낙인 아래 감염 위험이 높은 환경에서, 면허도 없는 사람에게 고액을 지불하고 중절 수술을 받았어. 혹은 적절한 방법조차 마련하지 못해 스스로 중절을 시도하다가 패혈증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지.

그런 시대 속에서 어린 대학생 아니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병원과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니지만, 번번이 좌절해. 사람들은 ‘그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아 하거나, 뚜렷한 방법을 몰랐거든. 방법을 아는 의사들은 본인이 쌓아 놓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절박함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지 두 달이 지나고 희망을 버리고 있던 그때, 아니는 몇 년 전 임신 중절을 경험했던 L.B. 를 통해 ‘천사를 만드는 사람’을 소개받아. (그 시절엔 임신 중절 시술가를 그렇게 불렀대.)

이 책에서 저자는 임신 중절이라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 구조를 조명해. 남성과 여성, 계급, 그리고 금기에 대해 말하지.

늘 그래 왔듯 임신 중절이 나쁘기 때문에 금지되었는지, 금지되었기 때문에 나쁜지를 규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법에 비추어 판단했고, 법을 판단하지는 않았다.
 – 본문 중에서

이쯤에서 이런 물음을 하고 싶은 연이들도 있을 거야. “왜 피임을 하지 않았나”라고. 놀랍게도, 그때는 피임 자체가 불법이었어. 1920년, 1차 세계대전 후 인구 감소를 우려한 프랑스는 피임 및 임신 중절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했어. 피임약 등 피임 도구 판매는 물론, 피임 정보를 공유하는 것까지 모두 금지됐지. 아니가 중절 수술을 받은 지 3년 뒤에 피임이 합법화됐고(뇌비르트 법), 그로부터 8년 뒤에는 자발적 임신 중절이 비범죄화됐어(베유 법). 만약 그녀가 이 법들이 제정된 이후에 임신했다면, 그녀의 '사건'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니의 '사건'은 몇 년을 비껴갔고, 24세가 된 아니는 결국 '범죄'를 저지르게 되지.

아니를 범죄자로 만든 건 그녀 개인의 선택일까, 아니면 사회의 압력일까? 개인의 삶 속 많은 부분이 사회적 조건과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야. ⟪사건⟫은 아니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읽는 우리는 그 삶을 둘러싼 거대한 사회 구조를 함께 목격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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