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러브

나는 문학이 낭비된 시간이며,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도덕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저 지극히 심오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나는 모든 방면에서 그 모험을 샅샅이 탐구했다.
 – 본문 중에서

1992년, 조지 H. W. 부시와 빌 클린턴, 로스 페로가 각축전을 벌이던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시인이 있어. 바로 미국 현대시와 퀴어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아일린 마일스'야. 그는 194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노동자 계층에서 태어나, 이십 대 중반 시인이 되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했어. 그 후 시집, 소설집, 논픽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꾸준히 글을 써왔지.

오늘 소개할 책은 아일린 마일스의 ⟪낭비와 베끼기⟫야. 이 책은 예일대 윈덤캠벨문학상 시상식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마일스의 2019년 연설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어. 여러 문학가들이 '나는 왜 쓰는가'를 주제로 이어온 이 연단에서, 그는 자신에게 글쓰기란 '낭비'이자 '베끼기'라고 말하지.

책은 그가 40년 넘게 살아온 뉴욕의 임대 아파트에서 강제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해. 거주지를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현실 앞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을 둘러싼 배경이어떻게 스스로의 삶에 나타났는지(혹은 삶을 이루었는지) 풀어내. 그리고 그것은 결국 자신이 행하는 글쓰기의 핵심을 고백하는 일이기도 해. 그는 이 책에서 글쓰기란 삶을 베껴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거든.

어쩌면 붙잡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개 사진도 찍는다. 방 안에서 움직이는 추상적인 빛줄기는 베껴야 한다고 명령하는 어떤 감각으로 나를 온통 채운다. 지난 주말 배에 올랐을 때 새로운 노트를 쓰기 시작했고 바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 드문드문 자리한 집들과 배가 머리 위로 그려내는 구불거리는 선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런 일을 하는 동안에는 역겹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조금은 드는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함께 모든 것을 (언어로) 베끼자고 에린을 부추기기도 했는데, 나는 겨냥하고 선택하는 바로 그 일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삶이다.
 – 본문 중에서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베껴내는 세계와 자아에 대해 지극히 사적인 고백을 이어가. 노동자 계층, 예술가, 퀴어, 저소득층. 아일린 마일스의 표현에 따르면 "엉망진창인 이들"에 관해서 말이야. 그들의 모습은 아일린 마일스가 살아온 장소이자,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을 통해 응축되어 드러나. 어쩌면 마일스를 임대 아파트에서 떠나게 하려는 집주인의 요구도 이 도시가 가진 배제의 메커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아일린 마일스는 한 인터뷰에서 대선 후보 출마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어.

1991~1992년 대선 시즌이었어요. 당시 조지 부시가 어떤 연설*에서 활동가들이나 여성들, 소수자, 성소수자, 현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표현의 자유에 위협이 된다고 했죠. 그때 그들이 진보적 언어였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보수적인 방식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어요.

* 미시간대학교 졸업 연설

마일스는 1991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캠페인(Write in Myles in ’92)을 진행했고, 이는 곧 전국적인 관심을 끄는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돼. 마일스의 정치 참여는 하나의 퍼포먼스 프로젝트이자 시위였지. 그의 출마는 "여성 후보, 동성애자 후보, 예술가 후보, 연봉 5만 달러 미만인 후보"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거든.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은 캠페인에 뭔가 강력한 것이 있다"는 확신을 느꼈고, "시민으로서, 시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캠페인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어.

이 책의 원제는 ⟪For Now⟫야. 그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노동계급 출신의 퀴어 예술가인 '자신'만의 '현재'에 도달하기 위해 지극히 심오한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는 세월 동안 수행과도 같은 '베끼기'를 반복하지. 자신의 삶을 베껴 쓴다는 표현은 숭고하다 못해 거룩하게 느껴지기도 해. 그게 자신의 현재에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면 더욱 그렇고. 이 행동이 내 인생에 확실한 효용을 가져다줄 거라는 보장이 없어도, 기꺼이 낭비와도 같은 시간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일 말이야. 얇은 책을 닫은 끝엔 이런 물음이 들었어. 우리는 오직 우리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각자의 현재를 위해 어떤 ‘낭비’와 ‘베끼기’를 하고 있을까? 혹은, 모든 손을 놓은 채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미국의 미술가이자 퀴어 운동가 조이 레너드는 1992년 아일린 마일스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지지하기 위해 ⟨나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 I want a president⟩라는 글을 썼어. 이 글은 지금까지도 "엉망진창인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대통령이 당선되길 바라는 사람들을 통해 낭독되어 왔지. 아일린 마일스를 다루는 이번 레터를 마치는 지금, (그리고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를 한 달 남짓 앞둔 지금) 이 글을 부분 인용하며 마무리하려 해. 오늘도 재밌게 읽었다면, 답장하기를 통해 연이들의 생각을 들려줘.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 I want a president⟩

나는 레즈비언(dyke)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게이(fag) 부통령을 원한다. 나는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 물질을 내뿜는 쓰레기 가득한 곳에서 자라 백혈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을 원한다. (…) 나는 에어컨이 없는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병원에서, 차량관리국에서, 복지부 사무실에서 긴 줄을 서 본 적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실직, 해고, 성추행, 동성애 혐오와 추방을 경험해 본 대통령을 원한다. (…) 그리고 나는 왜 이런 일들이 불가능한 것인지 궁금하다. 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선가 대통령은 항상 광대여야 한다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왜 대통령은 항상 창녀가 아니라 창녀를 사는 남자(John)인지, 왜 항상 노동자가 아니라 간부인지, 왜 항상 거짓말쟁이인지, 왜 항상 도둑질을 하면서도 결코 처벌받지 않는 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