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디엄 (Idiom)>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리미널(liminal)’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limen, 즉 '문턱'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단어야. 말 그대로 안과 밖, 시작과 끝,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기 직전의 '경계에 선 상태'를 뜻하지. 근데 여기서 말하는 '경계'는 꼭 물리적인 공간만을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건 시각과 감각의 경계이기도 하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나와 타자의 경계, 그리고 지금의 나와 다음 순간의 나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상태까지 포함하는 거지. 그래서인지 전시 내내 어딘가로 완전히 들어가지도,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애매한 어둠 속에 머무는 기분이 들었어. 그리고 그런 상태 자체가 이 전시의 핵심이자, 가장 불편한 지점이기도 했던 것 같아.

 상상해봤어. 만약 내가 VR 기기를 쓰고 있고, 그걸 벗을 수 없다면? 그 안에서만 관계 맺고 반응해야 한다면? 그건 체험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 조건일지도 몰라. 피에르 위그의 작품 속 존재들처럼.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감정도 서사도 없이 반응만 하는 존재. 그 앞에 선 나는 ‘진짜’라는 감각이 자꾸 흔들렸고, 그럴수록 내 존재에 대해 자꾸 다시 묻게 되더라. 나는 누구고,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건 정말 ‘현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