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어리💌] 우에다 쇼지 - 이토록 친밀한 '모던', 다야의 열세 번째 레터

2024. 11. 6.

'모던'이라는 단어, 그리고 모던이 들어간 수많은 말들은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쉬워. '모던한 디자인, 모던 하우스, 모던 룩'··· 등등. 모던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현대의' 또는 '근대의'라는 의미를 지닌 영어 낱말이야. 그리고 더 깊이는 ‘도회적, 현대적, 첨단의, 선진적, 세련됨, 과학적’ 이란 의미를 담고있어. 장식이나 감정적인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냉철한 이성에 입각한 관점을 취하는 것이기도 해. 그래서인지, '모던'은 미학적으로 세련되고 간결한 그 무언가를 연상하기도 하지만, 그 일면에는 냉철하다 못해 인간성이 결여된 뉘앙스를 떠올리기도 하지.

미드를 잘 아는 연이는 한 번쯤 들어봤을 <모던 패밀리>는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11년간 사랑받은 미국의 시트콤이야. 현대사회에서만 이룰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구성원들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풀어낸 시트콤이지. 전통적인 가족이 아니라, 새로운 네오-가족을 이루는 군상극이라고 볼 수 있어. 현대의 가족이 지닐 수 있는 첨단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첨단성에 미처 발 맞추지 못한 전통적인 사회/제도와 부딪히며 겪는 과도기적 충돌을 유쾌하게 풀어냈어.

'모던'이란 단어로 이번 레터를 시작한 이유는, 오늘 내가 소개할 사진가 '우에다 쇼지(Shoji Ueda)'가 '모던'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일본의 사진가이면서도, 동시에 모던의 정신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독특한 인물이기 때문이야.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 Ueda Shoji Theatre of the Dunes

piknic(피크닉)

기간: 2024.10.12.ㅡ 2025.3.2.

20세기 일본 사진계를 대표하는 작가 우에다 쇼지(植田正治, 1913-2000)의 단독 전시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Ueda Shoji Theatre of the Dunes)』 이 열립니다. (중략) 우에다는 규칙이나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시선으로 사진을 다루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 방법을 모색하며 동시대 예술사진을 선구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어떠한 유행이나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스스로 확립한 우에다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서구에서는 “우에다조(Ueda-cho)”라는 고유명사로 부릅니다.

[ 전시 정보 보러가기 ]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少女四態)>, 1939, © SHOJI UEDA

한국에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에다 쇼지는 일본 사진 역사에서 압도적인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야. 무려 70년간 현역 사진가로 활동한 우에다 쇼지가 남긴 작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도쿄국국립근대미술관, 도쿄도 사진 미술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어. 1989년 일본사진협회로부터 공로상을, 1996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상했고, 1995년 9월, 우에다 쇼지의 작품 1만 2000점을 소장한 ‘우에다 쇼지 사진 미술관’이 돗토리현에 개관했지. (출처: 뉴시스)

1913년 일본의 한적한 시골 변방에서 태어난 우에다 쇼지는 십대 시절 선물 받은 카메라를 계기로 독학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했어. 그가 사는 지역 '돗토리현'의 특징인 바닷가 근처의 사구(모래언덕)를 사진의 배경으로 삼으면서 독특한 그만의 정서를 표현했는데, 원근과 입체감이 사라진 사구를 배경으로 미니멀한 방식으로 피사체를 배치해 훗날 서구에서 '우에다조(Ueda-cho)'라고 불리는 그만의 독특한 기법과 감수성을 창조해내지. 위에 보이는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少女四態)>는 마을 소녀들을 바닷가로 데려와 각각의 시선과 포즈를 섬세하게 구성한 초기 대표작이야.

<모래언덕의 바다(Sea of Dune)>, 1950, © SHOJI UEDA

<모래언덕 위의 군상(A Crowd on the Dune)>, 1949, © SHOJI UEDA

우에다 쇼지 하면 그의 시그니처처럼 생각되는 '사구' 테마는 이후로도 평생에 걸쳐 그의 작업 세계 안에서 정물, 풍경, 추상, 패션, 상업사진 등 확장되고 변주되며 남아있어. 이번 회고전의 제목 또한 사구와 그의 작업 전반이 직간접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

우에다 쇼지는 이미 이십대에 두각을 내며 유명세를 얻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변방의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사진관을 운영하며 지역 안에서만 활동을 이어 나갔어. 보통의 경우, 더 많은 인프라와 기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마련이잖아.

그는 고향을 떠나고서는 작업 할 수 없다고 생각했대. 그의 모든 예술적, 영적 토대는 그의 아내와 사랑하는 아이들이 머무는 고향 돗토리현이었던 거야. 그는 자신을 철저하게 '변방의 아마추어'로 정의했어. 그에게 있어 아마추어리즘이란, '찍고 싶은 것만 찍는 것'이었던 거야. 더 큰 명예나 자본의 유혹 보다,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으며 호기심과 창조의 유희가 사그라들지 않는 것을 가장 중시했다고 해. 나는 우에다조 특유의 모던의 미학을 지니면서 동시에 배반하는 독특한 아우라가 바로 그 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어.

<아빠와 엄마와 아이들>, 1949, © SHOJI UEDA

결혼 후 3남 1녀를 둔 우에다 쇼지는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사진관 운영과 사진 작업을 병행하며 생계를 꾸렸어. 그가 찍은 가족 사진은 아무리 그 형식이 '모던'하다 할지라도, 결코 숨겨지지 않는 애정이 묻어나와. 아내 노리에는 그의 뮤즈였고, 그 덕에 각종 공모전과 전시에 쉼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해. 그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사진으로 밥벌이하는 것 대신, 고향 안에서 다양한 풍경과 모습, 인물들을 담기로 했던 거야. 자기 자신도 포함해서 말야!

<점프하는 나>, 1949, © SHOJI UEDA

위의 사진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유쾌하고 재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지. 70년 동안 현역 사진가로 활동한 사람의 저력 답지?

우에다 쇼지는 여러모로 오늘날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예술가의 면모와 다른 사람이야. 로컬에서만 활동했고,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충실하게 행복했던 것으로 보여. 예술가의 모던과 정반대의 인물이 일본 사진사상 최고의 모더니즘 사진가로 여겨지는 점, 동시에 모던과 반-모던의 역설을 함께 작품에 녹여냈다는 점, 현역으로 70년간 활동을 했다는 점 등, 그 예술적 아이러니는 '우에다 조'의 신화를 한층 격상시켜 주는 듯 해.

이번 회고전을 기획한 전시공간 피크닉의 김범상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해.

전시를 준비하며 반드시 우에다 쇼지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 저는 태생적으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보다는 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좋아해요.(웃음) 사람들은 호소에 에이코, 토마츠 쇼메이의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한 번 보면 쉽게 매혹되고 놀라곤 하죠. 그러다 우에다 쇼지의 사진을 보면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 결국 오래도록 매료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되죠.

(출처 = 바자 인터뷰)

내가 느낀 점 또한 비슷했어. 흑백 사진들은 특히나 일본의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미장센과 닮아있어. 오즈의 영화는 정적이고 느린 템포를 가졌지만 도장처럼 찍혀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거든.

오늘 레터에서 다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찍은 지역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는 풍경을 찍은 게 아니라, 고향을 향한 사랑을 찍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져. 이토록 친밀한 모던이라니! 전시를 관람할 연이들에게 꼭 <아이들의 사계절> 시리즈를 눈에 담아 오기를 추천하며, 마지막으로 그가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남겨두며 이만 레터 마무리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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