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러브

오늘 소개할 ⟪신이 떠나도⟫는 윤이나 작가의 장편소설이야. 이 책은 제목처럼, 신이 떠난 후의 무당의 이야기를 다뤄. 여의도와 엔터계를 주름잡던 '재림아씨' 현재림. 그는 럭키즈엔터테인먼트 대표인 강해진의 부탁으로 액막이굿을 하다, 사고처럼 한 순간에 모시던 신을 잃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지고 있던 현금 재산도 직원 문강은이 훔쳐 달아나지.

재림은 10년간 쌓아온 명성이 신빨 떨어졌다는 소문에 잡아먹히지 않게 바로 자취를 감추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시간을 보냈어. 그러다 1년여가 지나고, 재림의 딸인 미래가 재림과 할머니가 나오는 꿈을 꾼 뒤 재림에게 이런 말을 해. "엄마가 마지막 문제를 풀면, 돌아오실 거래."

재림은 그날 굿에서 풀고자 했던 문제가 '마지막 문제'라고 확신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 바로 '럭키즈엔터테인먼트의 신사옥 찾기'였지. 그리고 터가 좋은 곳에 위치한 무연맨션을 찾아내. 무연맨션은 산꼭대기에 위치한 허름한 맨션이었는데, '귀신의 집'이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었어. 4층이 없고, 층마다 4호가 없는 귀신의 집. 이런 곳이 왜 좋겠냐마는, 또 엔터계는 귀신이 나오면 대박이 난다는 미신도 있으니까. 여하튼 재림은 무연맨션의 주민들을 떠나게 만들어서 이 건물을 해진에게 팔면 신이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이 프로젝트를 혼자서 하긴 어렵겠지? 재림과 미래는 우선 505호에 입주했어. 그리고 무연맨션에 거주하면서 '태풍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503호 거주자 문강우에게 동업을 제안해. 물론 이런 사정을 다 말한 것은 아니고, "그쪽은 모르는 하늘의 사정으로 내가 무연맨션에 사는 사람들을 좀 도와야 해요. 도와서 잘 살게 해줘야만 쌓을 수 있는 선업이 있어요."라고 설명하지.

첫 타겟은 203호에 거주하는 황민영. 그는 강압적인 시댁으로부터 결혼식 전날(;;;;) 신부 측도 축가를 부르라는 요구를 받고, 강우에게 축가 심부름을 의뢰해. 청첩장을 받은 강우가 신랑 이름을 봤는데, 낯이 익은 이름인 거야! 강우는 어떻게 이 신랑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재림은 어떻게 황민영을 무연맨션에서 내보낼까?

연이는 혹시 신점을 보러 간 적이 있어? 사주나 타로는? 아니면 별자리나 띠 운세 같은 걸 믿어? 사실 나는 그런 걸 거의 믿지 않는 타입이고(사실은 전혀!), 그런 것을 보는 데 돈을 들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거든? 근데 요즘은 내 인생이 너무너무 꼬였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점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거야. 누구의 입을 통해서라도 내 미래가 어떤지 좀 듣고 싶더라고.

그때 깨달았어. 점을 보고, 운세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불확실한 미래에 조금이라도 확실성을 더하기 위해서 보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무당이 일러준 대로 하면 돈을 벌 수 있고, 별자리 운세에서 조심하라고 한 것을 삼가면 불행을 조금은 피할 수 있다는 믿음 말이야. 실제로 책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와.

"사람들이 무당을 찾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빈칸을 채우려고. 비어 있는 걸 채워서 받아들이고 싶어서."

- 본문 중에서

윤이나 작가는 이 이야기를 만들 때 '끝난 뒤에 시작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대. "모든 인간에게 신과 같은 ‘무엇’이 있다고 한다면, 신을 잃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까?" 주인공이 무당인 것도 그 때문이야. 재림은 '인간 현재림은 절반인 미완의 존재'이고, 신 없이는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어. 인간의 도움, 선의, 마음은 정해진 운명을 흔들 수 없다고 말해왔었지.

결말에 다다르면 재림의 딸 이름이 미래인 이유가 등장해.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만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대. 그래서 네 이름을 미래라고 지었어. 너를 생각할 때면 유일하게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라서.' 그리고 그렇게 이름 지어진 미래는 책의 마지막에서 재림에게 이렇게 말해. "이다음부터는 내가 쓸게." 신이 떠난 무당에게,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는 미래가 스스로 이런 말을 해준 거야.

⟪신이 떠나도⟫는 내내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분명 인간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해. 무연맨션의 주민들은 무언가 엉성하게 연대하며 봉착한 위기를 해결하는데, 어떤 순간에서는 '어, 이거 인간을 너무 낭만적으로 그려놓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 근데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았어. 비정해지라고 등 떠미는 세상에서, 서툴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같아서.

책은 분량이 꽤 있는데 속도감 있는 전개로 후루룩 읽을 수 있어. 또, 에피소드형 구조라서 드라마로 만들면 엄청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야기의 첫 형태가 시리즈 드라마의 대본이었다고 하더라고. K-POP, K-DRAMA, K-FOOD, 다음은 K-무속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다 보면 등장하는 깨알같은 미신들이나 무속 이야기도 킬링 포인트야. 연이들도 생각이 너무 무거워서 가라앉을 것 같은 날 이 책을 읽어보길 꼭 추천할게.

앞서 밝힌 것처럼 나는 무속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야. 아마 유유히 대표님께서 이 책을 선물해 주지 않으셨다면, 책 주제만 보고 읽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런데 우연히, 혹은 운명처럼 이 책을 받았고, 읽었고, 펼쳐보니 이것은 어떤 것보다 인간에 관한 이야기였지. 우리 삶에도 그런 것들이 있는 거 같아. 펼쳐보아야만 아는 것. 그런 순간을 하나 더 만들어준 유유히 대표님께 감사드리며. 이 책이 연이들에게도 연말연시를 행복하게 해줄 부적 같은 책이 되기를!